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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라힘 이븐 알 왈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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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이야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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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이야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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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이야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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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대
아바스 왕조
제62대
아바스 왕조
제63대
아바스 왕조
제64대
아바스 왕조
알 하킴 2세알 무타디드 1세알 무타와킬 1세알 무스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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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제65대
아바스 왕조
제64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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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왕조
압뒬하미트 2세메흐메트 5세메흐메트 6세압뒬메지트 2세
^^ 1 :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이 4명만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지만 하산도 잠깐 동안이지만 칼리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포함한다.


우마이야 왕조 13대 칼리파
ابراهيم ابن الوليد بن عبد الملك | 이브라힘 이븐 알 왈리드 이븐 아브드 알 말리크
제호한국어이브라힘 이븐 알 왈리드 이븐 아브드 알 말리크
아랍어ابراهيم ابن الوليد بن عبد الملك
영어Ibrahim ibn al-Walīd ibn ʿAbd al-Malik
존호칼리파
생몰 년도미상 ~ 745년 1월 25일
재위 기간744년 10월 4일 ~ 744년 12월 4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우마이야 왕조 13대 칼리파.

2. 생애[편집]


다마스쿠스 출신으로, 출생년도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나 형 야지드 3세가 태어난 701년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우마이야 왕조 제6대 칼리파 왈리드 1세이고, 어머니는 이란 출신의 첩 샤이 아프리드(Shah-i-Afrid)였다. 첩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왕위 계승권에서 밀려났고, 친동생 이브라힘 이븐 알 왈리드와 함께 조용히 살았다. 그러다 744년 4월 17일 칼리파 왈리드 2세가 마르완 이븐 무하마드의 정변으로 피살되고 형이 새 칼리파로 옹립되면서, 자연히 왕위 계승권자가 되었다.

744년 10월 4일, 야지드 3세는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그는 죽기 전에 동생에게 칼리파 직위를 물려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서면으로 승계에 관한 칙령을 발표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집트와 시리아, 이라크 일부 지역은 새 칼리파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나 야지드 3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던 이들은 그 역시 새 칼리프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지난날 야지드 3세를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했던 힘스 주민들은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정부군이 힘스를 포위했지만 쉽사리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하란에 있던 마르완 2세는 야지드 3세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었다. 마르완은 지난날 야지드 3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아지라 등 3개 지역의 총독을 맡기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충성을 맹세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브라힘을 따를 생각이 없었기에 24,000명의 현지군과 7,000명의 아랍군을 집결시키고 그들에게 봉급을 준 뒤 왈리드 2세의 아들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했다. 이후 일부 병력을 본진에 남겨둔 뒤 시리아로 진격했다. 그는 힘스를 포위하고 있던 군대를 철수시킨 뒤 야지드 3세의 두 아들에게 반란 토벌을 맡겼으나, 알레포 인근에서 패배했다. 이후 힘스인 등 더 많은 이들이 반란에 가담하자, 그는 가용한 모든 병력을 모아 술라이만 이븐 히샴에게 맡겨 마르완을 토벌하게 했다.

양군은 744년 11월 1일 누르 알 자르 강 맞은 편에 있는 발베크에서 맞붙었다. 하루 종일 전투를 벌였으나 어느 쪽도 우세를 잡지 못하했다. 이때 마르완은 3,000명의 기병과 함께 일꾼들을 산으로 보냈다. 노동자들은 숲을 벌목하고 누르 알 자르 강 위에 다리를 건설했다. 이후 기병대가 다리를 건너 여전히 전투를 벌이고 있던 적의 진영을 습격했다. 이로 인해 전의를 상실한 술라이만군은 와해되었고, 힘스인들은 자신들을 학살한 술라이만을 잡기 위해 맹렬히 추격했다. 술라이만 등은 서둘러 전장을 떠나 다마스쿠스로 달아난 뒤 그에게 완패 소식을 알렸다.

그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도망치기로 마음먹고, 마차에 보석을 가득 싣고 다마스쿠스를 떠났다. 그러면서 궁전 지하 감옥에 갇혀있는 왈리드 2세의 아들들을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이브라힘이 도망친 후, 마르완은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뒤 칼리파로 즉위했다. 12월 4일,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려 했으나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자 모든 걸 포기한 그는 마르완을 찾아가 항복 의사를 밝히며 자신을 사면해달라고 요청했다. 마르완은 찬탈자로서의 오명을 조금이라도 불식시키기 위해 그를 살려주기로 하고 라카 시에서 여생을 보내게 했다.

그러나 그는 곧 라카 시에서 도주했고, 마르완은 이 소식에 분노해 추격대를 보냈다. 745년 1월 25일, 그는 대 자브 운하 기슭에서 추격대에게 따라잡혀 피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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